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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한글의 본질과 한계 아는것이 참 한글사랑의 길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경범(kbpark) 기자
우리의 현대사에서 문자정책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문자의 본질을 정보과학적으로 따지지 못했던 것에 있지 않은가 한다.
물론 너도나도 정보화를 소리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르러서 아직 그 개념 자체가 먼 것으로만 여겨졌던 40~70년대의 상황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진정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우리의 문자관을 확립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문자는 애초에 인간의 말소리(言声)를 기록하려고 시작하였다지만 실상 문명시대에 들어와서는 사고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내부의 사고를 표현하기 위한 말을 가짐으로써 문명사회의 첫발을 내딛었지만 그 말소리를 표현하던 문자는 이제 문명 사회에서는 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사고의 표현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요즘에 일반에게도 자주 인용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개념이 있다. 하도 디지털 시대, 디지털 통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digital, 计数, 整数的)이란 것이 그냥 무작정 아날로그(analog, 連续, 无限定)보다 좋은 것이라고 여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보의 전달에 있어 아날로그는 이상적인 무한 정보의 형태이고 디지털은 현실적인 유한 정보를 나타낸다. 인간의 사고는 본디 아날로그한 것으로서 그 변이성은 무한하다.반면에 문자는 어느 정도의 표본화율(Sampling Rate)을 갖는 디지털정보이다. 그러므로 문자의 성능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본래의 아날로그 신호를 복원할 만큼의 변별력과 의미 대응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제 표음 문자 혹은 표의 문자라는 기능보다는, 문자로 표현된 인간의 사고 정보의 변별력의 관점에서 한글의 성격을 냉철히 살펴야 한다.한글 전용의 문제는 이미 사용의 편의성 여부를 따지는 단계는 지난 지 오래다. 지금 한글전용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의 합리적 판단을 넘어선 신앙적 힘으로서 자리하고 있다.한편 한자 학습을 강조하는 박식한 한학자 분조차, *언젠가는 우리가 한글 전용을 하게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자를 배워야 한다* 는 말을 하기도 한다. 즉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이상으로서, 마치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현생에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이상을 향해 정진해야하듯이, 우리 사회도 한글 전용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모두들 끝없이 노력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이념, ideology)에 상당수가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단언할 것은 우리 민족에게 한글 전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시간적 변수로 변화될 성질의 것도 아니어서, 한글 전용은, 도달하지는 않되 영원히 가까이 가는 무한수렴(convergence)의 대상도 될 수가 없다고 볼 수 있다.인간 사회의 앞날의 방향에 대하여 사회적 명망가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단정적인 *예언*을 한다는 것은 당돌하고도 과분한 일임에 틀림없다. 설사 명망가라 할지라도 한 인간으로서 앞으로의 인간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단정적인 예언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거듭 말하건대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이, 아사자가 속출하는 미개국으로 변하지 않는 한 영원히 불가능하다. 흔히들 한글의 초중종성의 조합으로는 몇만 가지의 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들 하며 이것을 가지고 종종 *한글의 무한한 표현력*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음절단위로 뭉친다는 전제하에서의 조합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표현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어느 문자 기호도 그 조합으로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한글은 초중종성의 순서로 문자 기호가 조합이 되어야 한다. 초성이나 종성에 해당되는 자음은 한 두개의 기호로 제한되어 있고 모음 다음에는 반드시 종성 혹은 다음의 초성이 나와야한다. 이러한 제약이 있으므로 한글자모로서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대폭 감소된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beauty*, *night*, *knight*,*rite*, *right*, *source*, *sauce*등 과 같이 자음이나 모음이 얼마든지 연달아 배열되는 다양한 철자법으로 많은 단어의 시각적 변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가령 10개의 기호가 있을 때 그 기호로 나타낼 수 있는 순열의 수는 10!이다. 그런데 이들 기호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어져서 그들이 서로 번갈아 배열되어야 한다는 규칙으로 순서에 제약을 가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3!이 된다. 즉 같은 개수의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영어의 약 6분의 1로 줄어든다.위에서 예로든 영어 단어를 한글로 옮겨 보자 *뷰티*, *나이트*, *나이트*,*라이트*, *라이트*, *소스*, *소스* 등인데 이것은 다시 로마자로 옮기면 원래 있던 묵음자 등에 의한 낱말의 시각적 변별기능은 사라지고 만다. 즉 서로 다르게 표기되었던 많은 낱말들이 단순히 같은 표기로 합쳐지고 마는 것이다.이에 반해 한글의 맞춤법은 각 자소에 해당되는 로마자를 지정하기만 하면 로마자로 *완벽히* 표기할 수 있다. 한글은 우리말을 완벽히 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라는 분들에겐 대단히 죄송스러운 결론이지만 우리는 영어에서의 표기법만을 생각했기 때문이지 로마자에 의한 다른 언어의 표기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ㄱ*을 반드시 *g*로 표현해야만 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여러 가지 복모음은 얼마든지 *a*,*e*,*i*,*o*,*u*를 조합하여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의 문자 구성은 순열이 규칙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가능한 조합의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우리의 사고정보, 심지어는 장단음 등 표음 문자로서의 우리의 말소리 표현 기능도 상당히 제한되는 것이다.그러므로 마치 수학을 공부하는 한 중학생이 *마주보는 두 평행선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과 같이, 한글 전용의 영원한 불가능성은 필자로서도 단언하기에 전혀 과분하지 않은 명제인 것이다. *한글전용을 계속 추진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라고 하는 것은 *평행선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언젠가는 서로 만나겠지...* 하고 기대하는 것과도 같다.
한글전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한글의 본질과 한계 아는것이 참 한글사랑의 길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경범(kbpark) 기자
우리의 현대사에서 문자정책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문자의 본질을 정보과학적으로 따지지 못했던 것에 있지 않은가 한다.
물론 너도나도 정보화를 소리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르러서 아직 그 개념 자체가 먼 것으로만 여겨졌던 40~70년대의 상황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진정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우리의 문자관을 확립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문자는 애초에 인간의 말소리(言声)를 기록하려고 시작하였다지만 실상 문명시대에 들어와서는 사고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내부의 사고를 표현하기 위한 말을 가짐으로써 문명사회의 첫발을 내딛었지만 그 말소리를 표현하던 문자는 이제 문명 사회에서는 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사고의 표현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요즘에 일반에게도 자주 인용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개념이 있다. 하도 디지털 시대, 디지털 통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digital, 计数, 整数的)이란 것이 그냥 무작정 아날로그(analog, 連续, 无限定)보다 좋은 것이라고 여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보의 전달에 있어 아날로그는 이상적인 무한 정보의 형태이고 디지털은 현실적인 유한 정보를 나타낸다. 인간의 사고는 본디 아날로그한 것으로서 그 변이성은 무한하다.반면에 문자는 어느 정도의 표본화율(Sampling Rate)을 갖는 디지털정보이다. 그러므로 문자의 성능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본래의 아날로그 신호를 복원할 만큼의 변별력과 의미 대응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제 표음 문자 혹은 표의 문자라는 기능보다는, 문자로 표현된 인간의 사고 정보의 변별력의 관점에서 한글의 성격을 냉철히 살펴야 한다.한글 전용의 문제는 이미 사용의 편의성 여부를 따지는 단계는 지난 지 오래다. 지금 한글전용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의 합리적 판단을 넘어선 신앙적 힘으로서 자리하고 있다.한편 한자 학습을 강조하는 박식한 한학자 분조차, *언젠가는 우리가 한글 전용을 하게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자를 배워야 한다* 는 말을 하기도 한다. 즉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이상으로서, 마치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현생에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이상을 향해 정진해야하듯이, 우리 사회도 한글 전용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모두들 끝없이 노력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이념, ideology)에 상당수가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단언할 것은 우리 민족에게 한글 전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시간적 변수로 변화될 성질의 것도 아니어서, 한글 전용은, 도달하지는 않되 영원히 가까이 가는 무한수렴(convergence)의 대상도 될 수가 없다고 볼 수 있다.인간 사회의 앞날의 방향에 대하여 사회적 명망가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단정적인 *예언*을 한다는 것은 당돌하고도 과분한 일임에 틀림없다. 설사 명망가라 할지라도 한 인간으로서 앞으로의 인간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단정적인 예언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거듭 말하건대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이, 아사자가 속출하는 미개국으로 변하지 않는 한 영원히 불가능하다. 흔히들 한글의 초중종성의 조합으로는 몇만 가지의 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들 하며 이것을 가지고 종종 *한글의 무한한 표현력*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음절단위로 뭉친다는 전제하에서의 조합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표현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어느 문자 기호도 그 조합으로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한글은 초중종성의 순서로 문자 기호가 조합이 되어야 한다. 초성이나 종성에 해당되는 자음은 한 두개의 기호로 제한되어 있고 모음 다음에는 반드시 종성 혹은 다음의 초성이 나와야한다. 이러한 제약이 있으므로 한글자모로서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대폭 감소된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beauty*, *night*, *knight*,*rite*, *right*, *source*, *sauce*등 과 같이 자음이나 모음이 얼마든지 연달아 배열되는 다양한 철자법으로 많은 단어의 시각적 변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가령 10개의 기호가 있을 때 그 기호로 나타낼 수 있는 순열의 수는 10!이다. 그런데 이들 기호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어져서 그들이 서로 번갈아 배열되어야 한다는 규칙으로 순서에 제약을 가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3!이 된다. 즉 같은 개수의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영어의 약 6분의 1로 줄어든다.위에서 예로든 영어 단어를 한글로 옮겨 보자 *뷰티*, *나이트*, *나이트*,*라이트*, *라이트*, *소스*, *소스* 등인데 이것은 다시 로마자로 옮기면 원래 있던 묵음자 등에 의한 낱말의 시각적 변별기능은 사라지고 만다. 즉 서로 다르게 표기되었던 많은 낱말들이 단순히 같은 표기로 합쳐지고 마는 것이다.이에 반해 한글의 맞춤법은 각 자소에 해당되는 로마자를 지정하기만 하면 로마자로 *완벽히* 표기할 수 있다. 한글은 우리말을 완벽히 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라는 분들에겐 대단히 죄송스러운 결론이지만 우리는 영어에서의 표기법만을 생각했기 때문이지 로마자에 의한 다른 언어의 표기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ㄱ*을 반드시 *g*로 표현해야만 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여러 가지 복모음은 얼마든지 *a*,*e*,*i*,*o*,*u*를 조합하여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의 문자 구성은 순열이 규칙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가능한 조합의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우리의 사고정보, 심지어는 장단음 등 표음 문자로서의 우리의 말소리 표현 기능도 상당히 제한되는 것이다.그러므로 마치 수학을 공부하는 한 중학생이 *마주보는 두 평행선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과 같이, 한글 전용의 영원한 불가능성은 필자로서도 단언하기에 전혀 과분하지 않은 명제인 것이다. *한글전용을 계속 추진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라고 하는 것은 *평행선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언젠가는 서로 만나겠지...* 하고 기대하는 것과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