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신비주의…지난 18년 바보 같았죠”[인터뷰] 2012.03.12 09:11:01 꾸벅하고 90도로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신인 아이돌 그룹 같다. 데뷔 18년차 여배우가 이러기 정말 쉽지 않다. 배우 김소연(32). 예의범절이 장난 아니다. 모든 여배우를 만나 본 건 아니니 유일하다고 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이런 여배우는 없었다. 어디를 가든 칭찬 일색이고, 싫어하는 소리를 하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 정말 궁금했다. 부모님의 영향일까. “부모님이 엄격하기도 하셨지만, 어렸을 때부터 제가 인사 잘하기로 소문이 났대요. 5살 때인가? 동네에서 아는 분들 10번 만나면 10번 다 인사했대요. 너무 인사하고 다니니 절 피해서 다른 길로 돌아다닌 분도 계시다고 하시더라고요. 습관이 그런 것 같아요.”(웃음) 김소연은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욱하고 까칠한 모습도 있다. 뭔가가 어질러져 있거나 하면 안에 있는 다른 성격이 나올 때도 있다”고 덧붙이며 또 웃는다.
영화 ‘가비’로 15년 만에 스크린 복귀. 고등학교 2학년 때 촬영한 ‘체인지’ 이후 오랜만이라서인지 ‘나 행복해요’라는 표정이다. 김소연은 극중 고종 황제에게 커피를 따라주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를 연기했다. 고종을 독살하라는 음모에 휩싸이며 사랑과 고뇌에 가득 찬 캐릭터다. 특히 아버지를 죽게 만든 고종을 향해 증오하는 마음에서 연민과 존경으로 변하는 감정 연기는 탁월하다. 과하지 않는 절제의 미를 제대로 살렸다. 김소연은 ‘가비’를 통해 배운 게 많았다고 회상했다. “다양한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였어요. 장윤현 감독님 같이 연기적인 면에서 저를 신경써주는 분을 만난 것도 좋아요. 이번 영화는 제 인생에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웃음) 촬영이 쉽진 않았다. 그는 “감정 연기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눈빛으로 얘기해야 했다. 절제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해야 하는데, ‘빼기 연기가 이렇게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부담이 컸다고도 털어놓는다.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부담감이 더 커진 듯하다. “촬영 전에는 연습할 때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지라는 기분 좋은 부담감이었는데, 지금은 또 개봉이 코앞이니 현실적으로 긴장하게 되네요. 하지만 단언컨대 우리 영화를 보고 시간이 지나면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완벽하게 만족을 하진 못하지만 자신의 연기를 보고 냉정했던 가족들이 인정을 해줘 기쁜 마음이다. “막대기 같다”며 어색함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던 가족들은 ‘가비’ 속 그의 연기를 호평했다. 그가 ‘가비’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KBS 2TV ‘개그콘서트’에 출연한 일화만 들어도 알 수 있다. 그는 여배우라면 출연하길 꺼려하는 코너 ‘꺾기도’에 자청했다. 추리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몸 개그를 한껏 선보였다. 녹화 전 대기실은 물론, 집과 현장에서 늘 연습을 했다. 그 결과, ‘꺾기도’에 녹아들어 말 그대로 ‘빵빵’ 터트렸다. “비록 예능 프로그램을 몇 개 안 했지만 좋은 점이 많더라고요. 여성 팬이 없었는데 여성 팬도 생겼고, 근래 처음으로 귀엽다는 말도 들었어요. 제게는 친근감 가는 연예인이라는 단어는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예능으로 갭을 좀 줄인 것 같아서 좋아요.”(웃음)
예전에는 여배우의 트레이드마크인 ‘신비주의’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연기에 방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프로그램에 나가보니 방송 후에 먼저 말을 걸어주는 분도 있고, 고마운 일들도 많이 생기더란다. 물론 안 좋은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다. 김소연은 예전에는 그 안 좋은 소수의 의견에 좌지우지 됐었다고 했다. 용기를 내볼까 하다가도 사람들의 말에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소수의 의견도 있지만 저를 좋아하시는 다른 많은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생각을 바꿨죠. 지난 세월이 정말 바보 같았던 것 같아요. 스스로 강박증에 갇혀 있었기도 했고요. ‘개그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안무 짜느라 밤을 꼴딱 샜는데 내 스스로에게도 선물이 된 것 같아요.”(웃음) 잠시 자신을 찾는 이가 없었을 때 “내 운이 이게 끝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우연찮게 기회가 다시 또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드라마 ‘가을 소나기’ 이후 3년의 공백 끝에 ‘식객’이 찾아왔다. 이어 ‘아이리스’, ‘검사 프린세스’, ‘닥터 챔프’, 영화 ‘가비’까지 행운이 와줬다고 표현한 그는 “다른 일에는 소질이 없다”며 “연기를 하나하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다시는 지금 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영화의 매력도 엄청나다는 걸 이버에 느꼈다”며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바랐다.
김소연은 ‘가비’에서 여러 벌의 의상을 입고 각기 다른 매력도 자랑해 눈길을 끈다. 그는 공사관에서 처음 촬영할 때 입은 옷을 달라고 부탁해 집으로 가져갔다고 털어놓았다. 이유는 “이 영화가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너무 고마운 영화이고, 공사관에서의 첫 촬영에서 따냐라는 인물에 가장 잘 몰입했기 때문”이다. “‘가비’라는 영화가 제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훗날 제 자식에게 이 영화에서 입었던 옷을 입고 커피를 내려주고 싶어요.”(웃음)